여행경보단계 조정 전후 지도(캄보디아). 
여행경보단계 조정 전후 지도(캄보디아).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노린 납치와 감금, 폭행, 강제노동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외교부가 급기야 일부 지역에 여행금지 경보를 내렸다. 캄폿주 보코산 지역, 바벳시, 포이펫시가 4단계 여행금지로 지정되고, 시하누크빌주는 출국권고 단계로 상향됐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단지 위험지역을 구분한 행정조치일 뿐, 근본적인 문제의 해법은 아니다.

올해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대상 강력범죄 피해는 600건을 넘었다. 고수익 구직 광고를 보고 출국한 이들이 여권과 휴대폰을 빼앗기고, 폭행과 고문을 당하며 보이스피싱 조직에 강제로 동원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일부는 사망하거나 중상으로 귀국하지 못한 채 현지 병원에 남아 있다. 범죄 조직은 국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현지 경찰력은 이를 제압하기에 역부족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대응은 뒤늦은 경보 발령에 그쳤다. 여행경보는 사후 통보에 불과하다. 이미 수백 명이 피해를 입은 뒤에야 내려진 금지 조치는 생명을 지키는 장치라기보다 관리의 책임을 벗기 위한 절차처럼 보인다. 외교의 존재 이유가 국민 보호에 있다면, 그 역할은 현지 범죄가 확산되기 전에 작동해야 한다.

이제 외교부는 경보 발령 이후의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 현지 대사관과 경찰 인력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피해자 구조와 귀환 지원을 상시화하고, 해외 구직 플랫폼과 연계된 범죄 정보를 실시간 공유할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국내에서는 허위 구직 광고를 단속하고, 해외 취업 브로커를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외교는 단순히 경고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다. 해외의 한국인이 위험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내밀고, 마지막까지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책임이다. 캄보디아의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외교부는 국민 보호 외교의 본령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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