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 해 동안 전체 사망자 수는 월평균 2만 9천 명 수준을 유지하며 완만한 감소세를 보였지만, 고의적 자해로 인한 사망자는 뚜렷한 감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국가데이터처의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2024년 1월부터 12월까지 ‘고의적 자해’로 분류된 사망자는 월평균 1천 2백 명 내외였다. 같은 기간 주요 질환 사망자는 일부 완화된 흐름을 보였다. 암 사망자는 상반기 7천 5백 명대에서 하반기 7천 명 안팎으로 줄었고, 순환기계 질환 사망자 역시 6천 명대 초반에서 5천 명대로 완화됐다. 반면 고의적 자해 사망자는 계절적 요인에 따른 일시적 변동만 있을 뿐 전반적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성별로 보면 남성은 2024년 1월 1천 18명에서 12월 814명으로 소폭 감소했지만, 여성은 같은 기간 354명에서 344명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남성의 고의적 자해 사망자가 여성보다 약 3배 많은 구조는 2025년에도 유지되고 있다. 올해 8월 기준 남성 782명, 여성 330명으로 비율 차이는 여전히 크다. 2025년 들어 고의적 자해 사망자 전체가 월 1천 1백 명 안팎으로 유지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사회적 요인에 의한 사망이 여전히 구조적으로 고착돼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체 사망원인 104항목 중 고의적 자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5~4.0% 수준으로, 교통사고나 간질환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는 전염병이나 급성질환의 사망률이 의료기술 발달로 점차 완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사회적 요인에 의한 사망은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고령화로 인한 질병 사망이 ‘관리 가능한 위험’으로 전환되는 동안, 정신건강 문제는 여전히 ‘관리되지 않는 위험’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의료체계는 생물학적 질환 관리 중심으로 발전해 왔지만, 정신건강 영역의 관리·지원체계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고의적 자해 예방을 위한 상담과 위기개입이 개별 중심에 머무르면서, 지역사회 기반의 대응체계는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정신건강관리센터와 공공의료기관 간 연계 강화, 위험군에 대한 조기 개입체계 구축 등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 생물학적 사망률은 기술로 완화되고 있지만, 사회적 사망률을 낮추는 구조적 대응은 여전히 부재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10월 29일 서울 로얄호텔에서 ‘영상콘텐츠 자살 장면 가이드라인 확산 방안 세미나’를 열고, 드라마·OTT·영화 등 영상물 속 고의적 자해 장면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했다. 이번 세미나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개정에 따라 자살유발정보 차단 의무가 강화된 이후, 미디어가 자살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확산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에서는 흡연 장면 규제 사례를 바탕으로 영상콘텐츠 내 고의적 자해 장면의 노출 기준을 검토하고, 창작자의 자율규제와 사회적 책임을 병행하는 방향이 제시됐다. 보건복지부는 민관 협력을 통해 고의적 자해 유발정보에 대한 신속 대응체계를 강화하고, 청소년·정신건강 전문가가 참여하는 지속적인 모니터링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정신건강 문제를 단순한 개인 요인으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고의적 자해 예방정책은 데이터 기반의 감시체계와 미디어 규제, 그리고 지역사회 대응이 결합된 종합 접근이 요구된다. /이성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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