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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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조사에서 성희롱 피해자의 75.2%가 '그냥 참고 넘어갔다'고 응답했다. 민간기업은 78.3%, 공공기관은 71.3%로 압도적 다수가 문제제기 대신 침묵을 택했다. 개인적으로 해결하려 했거나 동료와 의논한 비율은 각각 7.7%, 7.8%였고, 고충상담창구를 이용하거나(0.6%) 사내 공식기구에 신고한 경우(0.6%), 외부기관에 신고한 경우(0%)는 거의 없었다. 제도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정작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도와 신뢰 간의 괴리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왜 참고 넘어가는지 그 이유를 보면 괴리의 원인을 알 수 있다. '문제를 제기해봤자 조직에서 묵인할 것 같아서'라는 답변이 27.4%, '넘어갈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서'가 52.7%였다. 그밖에 '소문이나 평판 손상, 따돌림 등 보복이 두려워서' 7.9%, '업무상 불이익이나 직장생활에 지장이 있을까봐' 15.1%, '가해자와 관계가 나빠질까봐' 33.3% 등이 뒤를 이었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모두 불신과 두려움이 주된 이유였지만, 공공기관에서는 조직이 외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더 컸다.

공식적으로 신고한 경우에도 제대로 된 보호나 조치를 받지 못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적절한 조치가 없었다'는 응답이 23%에 달했고, 피해자 보호조치(10.6%), 가해자 징계(15.2%), 신원 보호(10.1%) 등은 일부에서만 이뤄졌다.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한 만족도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13.9%)와 '별로 만족스럽지 않다'(25.7%)를 합쳐 39.6%가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처리 결과 만족도도 부정 응답이 37.1%였다. 특히 민간기업은 과정과 결과 모든 면에서 공공기관보다 부정 응답 비율이 높았다.

직장 내 고충처리창구나 담당자에 대한 인지도는 전체 90.8%로 매우 높았지만, 실제로 이용을 권유받은 경험은 8.9%에 그쳤다. 알고 있는 것과 실제 이용하는 것 사이의 엄청난 차이는 피해자들이 절차를 밟기도 전에 이미 신뢰를 잃었거나, 권유받을 만한 환경 자체가 조성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단순히 장치만 마련해놓는다고 실제 활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번 조사 결과는 직장 내 성희롱 대응에서 제도 만들기가 끝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피해자가 안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으려면 제도적 보호, 신뢰 구축, 보복 차단이 모두 갖춰져야 침묵의 벽을 깨뜨릴 수 있다. 제도가 있다는 사실만 알리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실제 이용 경험이 긍정적으로 쌓이지 않으면 불신과 은폐의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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