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현장에서 잠들어 있던 비귀속 유물이 예술가들의 손끝을 거쳐 새 생명을 얻는다. 국가유산청과 한국문화유산협회는 11월 4일부터 16일까지 덕수궁에서 예담고 프로젝트전 ‘땅의 조각, 피어나다’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전국 4개 권역 예담고에 보관된 비귀속 유물을 현대 예술의 언어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통해, 유물의 발굴과 보존을 넘어 창작과 공유로 이어지는 새로운 가치의 흐름을 제시한다.

예담고는 발굴유물 중 국가 귀속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은 유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권역별로 조성된 역사문화공간이다. 현재 대전·전주·목포·함안 등 4개 권역이 운영 중이며, 2028년까지 수도권과 강원권에 추가로 조성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옛 것에 현재를 담는 공간’이라는 예담고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확장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덕수궁이라는 공간은 전시의 상징성을 더욱 깊게 만든다. 조선 궁궐의 전통과 근대의 흔적이 공존하는 장소에서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과거의 유물이 현재의 문화로 다시 살아나는 과정을 공간적 맥락 속에 녹여낸다.

전시에는 전통공예·현대미술·디자인 분야의 8인 작가가 참여했다. 국가무형유산 궁중채화 보유자 최성우는 발굴의 순간과 궁중문화의 화려함을 결합한 작품을 선보인다. 화예가 레오킴과 사진예술가 김유정은 기와를 식물과 미디어아트로 재구성해 유물과 현대인의 감각을 잇는다. 섬유공예가 김은하는 연꽃을 형상화한 직물을 청자와 결합해 생명의 재생을 표현하고, 김호준·최지원은 유물의 결손 부위를 복원하며 전통회화로 새로운 해석을 더했다. 서은하는 3D 프린팅을 활용해 친환경 소재와 토기를 결합한 공예품을, 이규비는 빛과 유리로 생명력을 시각화한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 기간 중에는 관람객이 직접 유물을 만지고 석고 조각에 색을 입히는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특히 11월 7일 덕홍전에서는 레오킴 작가가 유물을 소재로 한 창작 과정을 소개하고 작품 시연을 진행하는 특별 강연이 열린다.

국가유산청과 한국문화유산협회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예담고가 단순한 보관 공간을 넘어 국민이 문화유산을 직접 경험하고 해석하는 ‘살아 있는 문화 플랫폼’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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