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서구 괴정동의 한 다가구 주택에 전력량계가 설치돼 있다. 이현정 기자
대전 서구 괴정동의 한 다가구 주택에 전력량계가 설치돼 있다. 이현정 기자

한국전력공사가 산업용 대용량 전기 소비자를 대상으로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하면서 경영 정상화를 위한 복잡한 행보에 나섰다. 올해 4분기부터 적용되는 이번 요금 조정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용(을) 전기요금을 ㎾h당 평균 10.6원(6.9%) 인상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따라 해당 산업용 고객들은 월 평균 약 6300만원의 요금 중 약 431만원을 추가로 부담하게 될 전망이다.

9일 한전에 따르면 이번 전기료 인상으로 연말까지 약 4000억 원, 내년에는 약 2조8000억 원의 재정 개선 효과를 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전은 이번 조치가 긴박한 재정 상황을 타개하고, 고물가·고금리 시대의 서민 경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특히 이번 조정은 중소기업이 주로 이용하는 산업용(갑) 요금은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조치로 평가된다. 한전과 산업통상자원부는 가격 안정과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번 인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전력량요금 인상 결정은 한전의 누적 적자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한전은 2021년 이후 47조원의 누적 적자와 올 상반기 기준 201조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에너지업계 및 전문가들은 이번 인상이 한전의 재무 상황에 숨통을 트여주기는 하겠지만, 경영 정상화에는 턱없이 부족한 조치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김동철 한전 사장은 추가적인 ㎾h당 25.9원의 인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치적 부담과 민생 경제를 고려하여 보다 적은 폭의 인상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전은 요금 인상 이외에도 고강도 자구책을 발표했다. 인력 감축과 자산 매각 등을 통한 경영 혁신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본사 조직을 20% 축소하고 2000명에 가까운 인력을 감축하는 방안도 시행할 예정이다. 또한, 한전KDN 등의 자회사 지분 매각과 해외 사업 철수를 통해 현금을 창출하고 재정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계획도 밝혔다.

이와 달리, 주택용 및 일반용 전기요금은 동결을 유지함으로써 서민 경제에 미치는 부담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 회복 과정에서 가계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자 하는 정부의 방침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서울 주택가에 전력, 도시가스 량계가 설치돼 있다. 세종일보 DB
서울 주택가에 전력, 도시가스 량계가 설치돼 있다. 세종일보 DB

가스요금은 이번 조정에서 동결됐다. 이는 지난해 이후 다섯 차례에 걸친 인상과 겨울철 난방비 부담 증가를 고려한 조치로, 가스공사의 미수금 및 재무구조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라고 산업부가 설명했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산업계와 전문가들은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한전의 재정 안정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평가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주택용 및 일반용 요금 동결로 인해 일반 국민의 에너지 절약 필요성 인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적 부담을 감안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전기요금 조정이 재정 부담을 일정 부분 경감시키는 한편으로 에너지 절약 및 한전 경영 개선에 있어 어정쩡한 조치로 평가하며,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 모색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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