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 아래로 떨어졌고, 지금과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40년대에는 사실상 제로 성장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인구구조 변화와 총요소생산성 둔화가 이 같은 흐름의 핵심 원인이라며, 이를 막기 위한 구조개혁과 노동공급 확대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미 수차례 반복된 진단이지만, 정책 결정과 사회적 실천은 여전히 더디기만 하다. 지금의 위기는 수치로만 표현되는 통계 문제가 아니라, 향후 수십 년에 걸쳐 국민의 삶의 질과 국력 전반을 좌우할 본질적인 문제다. 정치와 사회가 이 책임을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책 연구기관들은 구조개혁의 방향과 효과를 제시하고 있다. 총요소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시장 규제 완화,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전환, 중소기업 경쟁력 제고, 혁신기업 육성 등이 거론된다. 동시에 여성과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여를 높이고, 수도권 중심 구조를 완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가 제시한 이민 확대 논의 역시 더 이상 회피만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현재처럼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국내 자원만으로는 노동공급 감소를 보완하기 어렵다는 점은 각종 분석에서 반복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들은 실현 과정에서 정치적 부담과 사회적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멈춰 섰다. 정규직 고용 보호를 완화하거나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를 손대는 일은 노동계의 반발을 불러오고, 수도권 규제를 강화하거나 외국인력 수용을 늘리는 방안은 각계의 이해관계 충돌을 야기한다. 결국 핵심은 결단의 문제다. 정치권이 중장기적 국가 생존 전략으로써 구조개혁에 나설 수 있느냐, 그리고 사회가 불편한 변화에 책임 있게 대응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지금 한국 경제는 이미 저성장의 현실에 들어섰고, 그 기초 체력마저 점점 약해지고 있다. 그에 비해 제도와 인식은 여전히 고성장기에 머물러 있다. 정부가 앞장서고, 국회가 뒷받침하며, 사회 전체가 고통을 분담하는 각오 없이는 구조개혁도, 노동공급 확대도 공허한 수사에 그칠 것이다. 위기의 본질은 알고도 행동하지 않는 데 있으며, 기회의 창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성장률 하락의 책임은 미래가 아닌 지금의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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