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GS25, CU,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등 편의점 4사의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혐의 관련 동의의결안을 최종 확정했다. 이는 2022년 7월 도입된 대규모유통업법 상 동의의결 제도가 처음으로 적용된 사례로, 편의점 업계와 납품업체 간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개선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번 결정은 제도의 상징성을 넘어 납품 생태계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동의의결 제도는 법 위반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 없이, 사업자가 자발적으로 제시한 시정방안이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을 거쳐 타당하다고 판단될 경우 공정위가 이를 수용하고 사건을 종결하는 방식이다. 법적 제재 대신 자율 시정과 신속한 피해 구제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 제재 중심의 접근 방식과는 궤를 달리한다. 공정위 입장에서도 행정자원 소모를 줄일 수 있고, 사업자 입장에서는 법 위반이라는 낙인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 제도의 편의점 업계 적용은 해당 시장의 구조적 특성과 무관치 않다. 국내 편의점 시장의 96.4%를 차지하는 4개 본사는 납품업체와의 협상력 격차가 큰 구조를 형성해 왔다. 납품 지연에 따른 과도한 손해배상금(미납페널티) 부과, 자사에 유리한 신상품 기준 설정을 통한 입점장려금 수취 관행 등은 중소 납품업체에 지속적인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 이러한 거래 구조는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고 상품 다양성과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정위가 제도 적용을 결정한 배경으로 해석된다.

공정위는 납품업체, 가맹점주, 관계부처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편의점 4사의 시정방안을 수용했고, 주요 내용으로는 △미납페널티의 편의점 본부 귀속분을 대형마트 수준(미납액의 6~10%)으로 인하 △국내시장 기준으로 신상품 입점장려금 기준 변경 △30억 원 규모의 상생협력기금 출연 및 광고·정보제공 서비스 무상 제공 등이 포함됐다. 납품업체는 이로 인해 연간 4억8000만~16억 원가량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제도 적용은 편의점 본부와 납품업체 간의 관계를 보다 대등한 구조로 전환할 가능성을 열었다. 특히 신상품 입점장려금 기준이 납품업체 자율 판단 중심으로 바뀌며, 불필요한 비용 부담이 줄어드는 등 협상력에서 구조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게 되었다. 납품업체는 이러한 비용 절감을 R&D나 품질 개선에 재투자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는 소비자 만족도 제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맹점주와 본부 간의 이해관계 측면에서도 이번 결정은 의미가 있다. 미납페널티는 가맹점주와 본부 간 배분되는 구조로 알려졌으며, 본부의 귀속분을 줄임으로써 가맹점주의 수익 구조에 변동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납품 안정성과 거래 신뢰도 제고가 가맹점 운영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경제적 효과 측면에서 보면, 납품업체의 비용 절감과 상생기금 활용은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고용 창출로 이어질 수 있는 긍정적 요인이 된다. 이번 조치는 대형마트나 백화점, SSM 등 유사한 구조를 가진 다른 유통채널로의 제도 확대 가능성도 시사한다. 공정위는 향후 유통분야의 공정거래 질서 확립을 위해 동의의결 제도를 지속 활용할 방침이며, 제보시스템 개선과 이행 점검 강화 등을 통해 제도의 실효성을 보완할 계획이다.

다만 동의의결 제도는 법 위반 여부를 확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법적 책임 회피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사업자의 자발적 이행에 의존하는 구조는 제도 실효성 확보 측면에서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공정위가 제도의 성실한 이행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사후 점검 체계와 제보자 보호 장치, 이행 결과의 투명한 공개가 병행돼야 할 것이다.

이번 동의의결은 유통업계에서 처음으로 제도가 적용된 사례로, 향후 대형마트나 SSM 등 다른 유통 채널로의 확대 가능성도 시사한다. 공정위는 납품업체와 유통 본부 간 거래 질서 개선을 위한 기준 마련과 불공정 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 제도의 정착을 유도할 방침이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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