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한국 경제에서 민간소비 증가세는 뚜렷하게 둔화했다. 민간소비 증가율은 경제성장률을 밑돌며 평균 소비성향 또한 하락했다. 일반적으로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가 소비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기대수명이 크게 늘어나면서 은퇴 이후를 대비해 50~60대 중장년층이 지갑을 닫고 저축을 늘린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러한 ‘수명 연장의 역설’은 장기적으로는 다른 모습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고령 인구 비중 확대 자체는 오히려 경제 전반의 소비성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인구 구조가 급속히 바뀌어 고령층, 특히 75세 이상 초고령 인구의 비중이 커지면, 이들은 소득은 낮지만 평생 모아온 자산을 바탕으로 소비를 늘려 소득 대비 소비성향이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기대수명 증가세가 둔화되고, 초고령층 비중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소비성향은 2034년경 저점을 찍고 반등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층의 순자산은 높고 부채는 낮아 소비 여력이 과거보다 커졌다. 동시에 자녀 교육이나 주택 마련 등의 대규모 지출 부담을 이미 끝낸 가구가 많아, 가처분 자금이 많은 세대로 평가된다.

디지털 격차도 줄어들며 고령층의 소비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60대 이상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90%를 넘으며, 온라인 쇼핑과 모바일 서비스 이용이 활발해졌다.

실제로 2024년 여행경비와 면세소비가 고령층에서 급증했고, 손자녀를 위한 소비도 증가하고 있다. 고령층은 더 이상 지출을 억제하는 세대가 아닌, 문화·건강·여가를 중시하는 능동적 소비 세대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소비 회복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여를 높이고, 자산 유동성과 소비 유인을 확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노동시장 유연화, 자산활용 제도 도입, 문화·여가 소비 인센티브가 그 예다.

일본은 고령층 소비가 전체의 40%를 차지하고 있고, 중국은 실버경제를 국가 전략으로 삼고 있다. 한국도 고령화가 소비 부진의 요인이 아니라 새로운 소비 기반으로 작동하도록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결국 인구구조 변화가 가져올 소비 패턴의 전환을 준비하는 것이 경제 회복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윤소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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