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당초 발표한 10조원보다 2조원 증액한 1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확정했다. 정부는 AI·반도체 경쟁력 강화, 소상공인·취약계층 지원, 재해·재난 대응이라는 세 축에 각각 4조원, 4조원, 3조원을 투입하겠다는 방침이다. 시기적으로 필요한 추경이라는 데는 여야 모두 공감하고 있으나, 실제 집행 과정에서 균형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다.

무엇보다 정부가 균형 잡힌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AI·반도체 등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와 당면한 민생 위기, 안전 대책을 함께 고려했기 때문이다. 특히 AI 분야에만 1조8천억원을 투입해 첨단 GPU 3천장을 즉시 공급하고 연내 1만장을 추가 확보하겠다는 계획은 급변하는 글로벌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예상되는 관세전쟁에 대비한 수출기업 정책자금 25조원 공급 역시 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한 선제적 대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의 디테일을 살펴보면 여전히 아쉬운 점이 존재한다. 소상공인 지원책으로 제시된 '부담경감 크레딧'이나 '상생페이백 사업'이 과연 22개월째 이어진 숙박·음식점업의 불황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내수 부진이 단순히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면, 일회성 지원보다는 소비 행태 변화와 산업구조 개편에 맞춘 장기적 대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재해·재난 대응 예산 3조원 중 상당 부분이 산림헬기, AI 감시카메라, 드론 등 장비 도입에 투입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경남·경북 대형 산불의 교훈을 되새기며 첨단장비를 확충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재난관리 시스템의 근본적 개선과 지자체 대응 역량 강화도 병행되어야 실질적인 국민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우려되는 점은 정부와 민주당 간 추경 규모를 둘러싼 신경전이다. 민주당은 최소 15조원까지 증액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는 예산 총액 경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추경의 규모가 아니라 예산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집행되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느냐이다. 추경이 단기적 부양책에 그치지 않고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과 안전망 강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면밀한 성과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최상목 부총리가 언급한 대로 추경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정치권은 정쟁을 넘어 추경의 신속한 처리에 협력해야 한다. 동시에 정부는 단순히 돈을 풀어놓는 데 그치지 않고, 각 분야별로 구체적인 성과지표를 설정하고 이를 철저히 관리해야 할 것이다. 추경 12조원이 AI·반도체 경쟁력 확보, 내수 회복, 국민 안전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도록 정교한 집행 계획과 책임 있는 관리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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