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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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 안덕근 장관과 고용노동부 김문수 장관이 어제 성남 판교에서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적용을 논의하는 간담회를 개최했다. 두 장관은 반도체 특별법이 국회에서 지지부진한 가운데, 정부 차원의 비상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현재 우리 반도체 산업은 중국의 맹추격과 대만의 도약, 미국과 일본의 전략적 투자 확대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라는 일률적 규제가 국내 반도체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기업 규모와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기업에 동일한 근로시간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이는 대응 자원이 풍부한 대기업보다 중소·중견기업에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간담회에 참석한 중기중앙회 관계자의 지적처럼, 대기업은 인력을 충원하거나 교대 근무를 활성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규제에 대응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럴 여력이 없다. 결국 일률적 규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기술 전쟁이자 속도전이다. R&D 과정에서는 실험과 테스트가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현행 주 52시간제 하에서는 연구원들이 근로시간 한도에 도달하면 강제로 휴가를 가야 하고, 이로 인해 연구의 연속성이 깨지고 부서 간 협업이 저해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간담회에 참석한 기업들이 토로한 애로사항이 바로 이 점이다.

반도체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간 갈등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여당은 주 52시간 근로 예외 조항을 법안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야당은 이를 제외한 특별법을 우선 처리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산업 경쟁력 확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정부가 노동부 지침 개정을 통해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은 이런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근로시간 규제는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산업의 특성과 기업의 규모를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적용은 오히려 산업 생태계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대기업에 비해 인력 운용의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동일한 규제 하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이는 대·중소기업 간 격차 확대로 이어져 산업 생태계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한다.

물론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도 중요하다. 무조건적인 근로시간 연장이 아니라, 산업과 기업의 특성을 고려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가 언급한 대로 근로자 건강권을 보장하면서도 업계의 애로를 해소할 수 있는 균형 잡힌 해법을 찾아야 한다. 반도체 R&D 인력에 대한 특례는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을 제고하고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조치임을 인식해야 한다.

기업 규모와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근로시간 규제는 오히려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중소기업에 더 큰 부담을 안길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이제는 기업 규모와 산업 특성에 맞는 유연한 근로시간 정책을 도입할 때다. 정부와 국회, 노동계는 반도체 산업의 위기를 직시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을 마련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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