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난보다 무서운 것은 무책임
정부의 ‘10·29 이태원 참사 합동감사’ 결과는 예견된 참사와 방치된 책임이 한데 얽힌 국가적 실패의 보고서다. 경찰은 인파가 몰릴 것이 명확한 이태원 일대에 단 한 명의 경비 인력도 배치하지 않았고, 용산구청은 재난 발생 직후 초동 대응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통령실 이전이 현장 경비 공백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정부 조사에서 처음 확인된 점은 특히 무겁다.
감사 결과, 경찰은 참사 발생 4시간 전부터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가 11건 접수됐음에도 단 한 차례만 현장에 출동했고, 나머지는 시스템상 ‘출동 완료’로 허위 입력됐다. 현장 지휘부는 보고와 대응 모두 부실했고, 서울경찰청 지휘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도 아무 조치 없이 넘겼다. 일부 책임자는 징계 없이 퇴직했으며, 경찰청의 감찰 절차 자체가 누락된 사실도 드러났다. 용산구청 역시 재난 상황실이 작동하지 않은 채 허위 내용이 포함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참사 이전의 대비, 사고 직후의 대응, 사후의 징계까지 어느 단계에서도 행정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이번 감사는 정부가 처음으로 사전 대비부터 사후 조치까지 전 과정을 공식적으로 조사한 사례다. 그러나 책임자 징계로 끝나는 결과라면, 이는 진상 규명이 아니라 절차적 마무리에 불과하다. 참사는 특정 개인의 과실이 아닌 구조적 실패였다. 대통령실 이전 이후 용산서의 경비 부담이 급증했음에도 인력 재배치를 하지 않은 경찰청, 징계 요구를 내부 보고로만 종결한 서울시, 재난 대응 체계를 구축하지 않은 용산구청 모두가 공범이다.
정부는 핼러윈을 앞두고 이태원과 홍대 등 다중운집 지역을 중심으로 특별 안전대책을 시행한다. 33개 중점관리지역에 경찰과 소방 인력을 배치하고, 자치단체별 대응 실태를 점검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이 단순한 행사 안전 점검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매뉴얼은 이미 존재한다. 문제는 그것이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고를 무시하고 책임을 미루는 관행, 사고 이후 보고로 대신하는 행정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또 다른 참사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참사 1년, 유가족의 상처는 여전히 깊다. 정부가 뒤늦게 드러낸 진실은 의미가 있지만, 진상 규명은 출발점일 뿐이다. 재난 대응의 전 과정에서 어떤 판단이 누락됐고 왜 제도적 대응이 실패했는지 철저히 밝혀야 한다. 올해 핼러윈 특별대책은 단순한 안전 점검이 아니라, 이태원 참사로부터 국가가 무엇을 배웠는가를 시험하는 계기다. 이번엔 보고서가 아니라 변화로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