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밝혀진 이태원의 밤, 무너진 시스템의 기록

2025-10-23     이현정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과 용산구청의 사전 대비와 초기 대응이 모두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23일 ‘이태원 참사 합동감사 TF’ 결과를 발표하고 경찰 51명, 서울시청과 용산구청 관계자 11명 등 총 62명에 대해 징계 등 책임 조치를 요구하기로 했다. 이번 감사는 정부가 처음으로 유관 기관의 사전 대비부터 후속조치까지 전 과정을 조사한 결과로,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현장 경비 공백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경찰은 참사 당일 대통령실 인근 집회관리에 인력을 집중 배치하면서 이태원 일대에는 단 한 명의 경비 인력도 배치하지 않았다. 용산경찰서는 2020년과 2021년에 마련했던 핼러윈데이 혼잡경비계획을 2022년에는 수립하지 않았다. 서울경찰청 지휘부는 인파 집중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별도의 보완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특히 대통령실 이전 이후 용산서 관내 집회·시위가 26배 이상 증가했음에도 경비 운용의 우선순위가 대통령실 인근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참사 전후의 상황 관리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참사 발생 4시간 전부터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가 11건 접수됐지만, 용산경찰서는 단 한 차례만 현장에 출동했다. 나머지는 시스템상 ‘출동 후 조치 완료’로 허위 입력됐다. 당시 용산경찰서장과 서울경찰청장은 참사 현장 도착이 늦었고, 이후에도 지휘 공백이 이어졌다. 경찰청 특별감찰 결과보고서가 작성되지 않은 채 종료됐고, 일부 책임자는 징계 없이 정년퇴직한 사실도 이번 감사에서 확인됐다.

용산구청의 대응은 더욱 미흡했다. 참사 직후 구청 상황실 근무자들이 전단지 제거 지시를 수행하느라 자리를 비우는 등 재난 초동보고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다. 구청장과 부구청장은 재난안전대책본부와 통합지원본부 설치를 지연시켰고, 실무반 소집도 이뤄지지 않았다. 통합대응 체계가 부재한 가운데 각 부서가 개별적으로 대응하면서 상황 혼선이 발생했고, 사고 직후 배포된 보도자료에는 ‘설치되지 않은 상황실이 운영됐다’는 허위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행정안전부 감사에서는 재난대응 책임자에 대한 징계 절차 또한 부적절하게 처리된 정황이 드러났다. 용산구의 징계요구를 받은 서울시는 내부 보고만으로 징계를 보류했고, 해당 책임자는 결국 제재 없이 퇴직했다. 경찰청 역시 감찰 인계 절차가 누락돼 일부 책임자가 징계를 받지 않은 채 면책됐다.

이번 감사는 참사 이후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감사 TF는 예견된 대규모 인파에 대비하지 못한 경찰의 판단, 재난 발생 직후 초기 대응 실패, 그리고 후속 징계의 미비 등 전반적 행정 실패를 공식 확인했다. 정부는 감사 결과를 토대로 책임자 징계와 제도 개선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