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년 88%, 왜 돌아가기만 할까

2025-09-29     세종일보

농촌 소멸은 이제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2024년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절반 가까이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청년 유출이 계속되는 한 이 흐름을 막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최근 농촌 워케이션 정책에서 주목할 만한 신호가 포착됐다. 부산형 워케이션 참여자의 88%가 수도권 청년층이었고, 충남 프로그램 참여자 181명 역시 대부분 젊은 세대였다. 제주에는 올해 상반기에만 1만 3000명이 워케이션에 참여했다. 청년들이 농촌으로 향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농촌 워케이션 거점을 10곳으로 확대하고, 숙박비 지원과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양적 성장에 집중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가시적 성과도 나타났다. 충남에서는 2억 원 이상의 지역 소비가 발생했고, 부산형 워케이션은 153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냈다. 제주의 참여자 만족도는 95%, 재참여 의향은 99%에 달했다. 숫자만 보면 성공적이다. 그러나 충남 프로그램 참여자 중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지역과 관계를 이어간 사례는 거의 없었다. 3박 4일 체류 후 청년들은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갔다. 워케이션은 일시적 방문을 만들어냈을 뿐, 정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는 현재 워케이션 정책이 '오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머물게 만드는' 데는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들이 농촌에서 원하는 것은 단기 체험이 아니다. 안정적인 원격 근무 환경, 함께 생활할 커뮤니티, 최소한의 문화·생활 인프라다. 그러나 농촌체험마을 288곳을 분석한 결과 상당수가 초고속 인터넷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장기 체류에 적합한 숙소는 개별 농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농지 활용 제한, 복잡한 건축 인허가 절차는 청년들이 농촌에 공간을 마련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든다. 제도는 20세기에, 인프라는 관광객 기준에 맞춰져 있다. 청년들이 '살 수 있는' 농촌이 아니다.

워케이션이 진정한 인구 유입 정책이 되려면 단계별 전략이 필요하다. 단기 체류를 경험한 청년이 중기 거주로, 나아가 장기 정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커뮤니티 기반의 프로그램 설계, 원격근무 가능한 기업 유치, 청년 정착 지원 패키지가 결합되어야 한다. 농지 활용 규제 완화, 모듈형 건축물 허용, 장기 임대 숙소 공급 확대 등 제도 개선도 시급하다. 무엇보다 지역사회가 청년을 일시적 방문객이 아닌 잠재적 주민으로 받아들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농촌 워케이션은 인구 소멸을 막을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청년들은 이미 농촌으로 향하고 있다. 이들을 단순히 '체험 관광객'으로 소비하고 돌려보낼 것인가, 아니면 '미래 주민'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선택은 정책에 달려 있다. 거점 10개를 20개로 늘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오고 있는 청년들이 내일도 그곳에 있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워케이션 정책은 지금, 체험에서 정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