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실태조사]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직장

2025-08-12     이현정 기자
아이클릭아트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12.3%가 2차 피해까지 경험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공공기관의 경우 17.6%로 민간기업 8.2%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아무리 제도가 정비되고 인식이 개선되었다고 해도, 정작 피해 발생 후 추가적인 고통을 막아주지 못하는 현실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2차 피해의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보니 더욱 심각했다.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지지받기는커녕 의심받거나 침묵으로 일관하며 참으라는 반응을 보인 경우가 8.9%나 됐다. 악성 소문을 퍼뜨리는 경우도 5.5%, 개인정보나 피해 내용을 함부로 알리는 경우도 3.7%에 달했다. 심지어 폭언이나 폭행(2.3%)은 물론,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탓하거나 퇴사를 종용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경험들은 당사자의 업무나 정신건강은 물론 직장 내 인간관계까지 망가뜨린다. 응답자의 29.6%가 일할 의욕을 잃거나 직장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졌으며, 직장문화에 실망하고 동료들과 관계를 맺기 어려워하거나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호소했다. 공공기관 직원들의 경우 업무 집중력 저하(12.5%), 직장문화에 대한 실망(16.5%), 정신적 스트레스(8.5%) 비율이 민간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 70.4%였지만, 민간기업(78.4%)이 공공기관(60.2%)보다 훨씬 높아서 조직 성격에 따른 차이를 보여준다.

문제는 피해를 당한 후에도 대부분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이다. 전체의 56.8%가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주변 사람과 상의(29.3%)하거나 상사에게 도움을 청한 경우(16.7%)가 그나마 많았다. 외부기관에 상담을 요청한 경우는 5.1%에 불과했고, 병원 치료나 약물 치료를 받은 경우는 1.8%밖에 안 됐다. 2차 피해를 당한 경우에도 29.4%가 손을 놓고 있었고, 지인 상담(49%), 상사 도움 요청(16.1%)이 주된 대응방식이었다. 전문기관 상담(8.4%)이나 의료진 도움(9.7%)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었으며, 특히 민간기업 피해자들은 외부 도움을 거의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성희롱 피해 그 자체보다는 이후 조직의 반응과 분위기, 문화적 압력이 피해자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드는 핵심 원인이라는 게 분명해졌다. 문제를 공개적으로 해결하려다가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거나 관계가 틀어질 것을 걱정해서 입을 다물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예방교육을 하고 신고체계를 만들어도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건이 터진 다음의 심리적, 관계적 벽을 먼저 허물어야 한다. 2차 피해에 대한 확실한 처벌과 보호대책이 없다면 피해자 지원체계는 겉치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