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재편·ESG 압박 속 산업별 10년 성적표
지난 10년간 국내 제조업은 글로벌 공급망 불안, 미중 무역 갈등, 코로나19 팬데믹, 에너지 가격 변동 등 연속적인 대외 충격을 받으면서도 산업별로 다른 궤적을 그렸다. 2020년 팬데믹 시기 공급지수가 단기 급락했으나, 이후 회복 국면에서 산업별 격차가 확대됐고 일부 부문은 장기 성장을, 일부는 구조적 침체를 이어갔다.
반도체 제조업은 2015년 평균 공급지수 68.1에서 2025년 5월 126.9로 86.2% 상승하며 명실상부한 제조업 성장의 중심에 섰다. 글로벌 IT 수요 폭증, 메모리·비메모리 반도체 수요 다변화, 정부의 전략 산업 육성 정책이 상승세를 견인했다. 다만 핵심 장비와 원재료의 해외 의존도가 여전히 높아 공급망 차질이 발생할 경우 타격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 및 기타 운송장비 제조업은 전기차·수소차 전환, 친환경 규제 강화, 해외 시장의 전동화 수요 확대에 힘입어 2021년 이후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2025년 들어 전기차 수요 조정, 배터리 가격 변동, 일부 시장의 정책 축소 영향으로 변동성이 커졌다. 군수·항공기 중심의 기타 운송장비 부문은 대형 프로젝트 수주 시 공급지수가 단기 급등했다가 이후 급락하는 패턴을 반복하며, 대형 수주 의존도가 높은 구조가 여실히 드러났다.
산업용 기계 및 장비 수리업은 2025년 5월 공급지수가 154.7로 집계됐다. 노후화된 설비를 보유한 기업들이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 신규 투자 대신 유지·보수를 선택하면서 성장세를 이어갔다. 이는 경기 침체기에도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기 방어적 성격이 강한 업종임을 보여준다.
의료용 물질 및 의약품 제조업은 2015년 평균 75.9에서 2025년 5월 131.1로 72.8% 상승했다. 고령화에 따른 의약품 수요 확대, 팬데믹 이후 의료·헬스케어 산업의 중요성 부각, 국내 제약사의 글로벌 진출 확대가 상승 배경으로 작용했다. 특히 바이오의약품, 백신, 희귀질환 치료제 분야에서의 투자가 지속됐다.
반면 일부 산업은 장기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비금속 광물제품 제조업은 113.7에서 89.2로 21.5% 감소했다. 시멘트·유리 등 건설 자재 수요가 부동산 경기 침체와 SOC 예산 축소로 위축된 영향이 컸다. 가구 제조업은 95.4에서 62.0으로 35.0% 하락했다. 저가 해외 제품의 대량 유입, 기술 혁신 부재, 소비 트렌드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 부문은 국내 생산 기반 축소와 고용 감소라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원자재 가격 변동은 국내 제조업 전반에 걸쳐 직접적인 충격을 주었다. 일부 산업은 부품·소재 국산화율을 높이는 데 성과를 거뒀지만, 반도체·에너지 장비 등 핵심 분야는 여전히 수입 의존도가 높다. 미중 무역 환경 변화, 지정학적 리스크, 탄소중립 규제 강화 등 복합적인 대외 변수는 산업 전략의 재조정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기업과 정부는 공급망 다변화, 해외 생산기지 확충, 고부가가치 분야로의 투자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향후 10년간 국내 제조업이 직면할 핵심 과제는 뚜렷하다. 우선 기술 혁신과 국산화율 제고를 통한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기조에 부합하는 지속가능 제조 체제로의 전환도 필수적이다. 또한 원자재·부품의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시키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이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