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숫자는 늘고 대응은 제자리
최근 5년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국민의 수가 줄지 않고 되레 반등하고 있다. 정부는 다섯 차례에 걸쳐 자살예방계획을 수립하고 상담 바우처 확대, 게이트키퍼 양성, 언론 가이드라인 개편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놨지만, 통계는 냉혹하다. 2024년 한 해 극단적 행위로 숨진 사람은 1만4400명에 육박했으며, 인구 10만 명당 사망률은 28.3명에 이른다. 정부가 설정한 2027년 목표치인 18.2명과는 여전히 격차가 크다.
정책의 실효성은 구조적 요인을 직시하지 못한 채 기술적 접근에 머문 결과다. 2021년부터 세 차례 주요 대책 시행 이후에도 관련 사망자는 빠르게 원래 수준으로 되돌아갔고, 이후 오히려 증가세로 전환됐다. 실업, 가계부채, 사회적 고립, 정신건강 공백이 누적되는 동안 제도는 지역 격차와 접근성 부족, 데이터 비공유 등으로 대응력을 상실하고 있다.
특히 50~60대 중장년 남성과 80세 이상 고령층에서 사망률이 집중되고 있다는 점은 더 깊은 위기를 드러낸다. 이들은 경제적 충격과 복지 사각지대가 교차하는 계층으로, 단순한 심리지원이나 캠페인만으로는 생명 위기를 방지하기 어렵다. 청년층에서는 유명인의 극단적 행위가 촉매가 되어 집단적인 심리 불안을 유발하는 현상도 반복되고 있다. 이는 개별적 치료나 상담 차원을 넘어 사회문화적 구조에 대한 전면적 개입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제 생명 위기 대응은 보건복지부의 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정신건강 관리, 고립 방지, 고용 안전망, 돌봄 체계, 연금 안정성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범정부적 대응 체계가 시급하다. 경찰청의 변사 기록, SNS상 위험 키워드, 지역 상담센터 간 데이터 연동 등 실시간 경보 시스템도 기술적으로 충분히 구현 가능한 시대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실행의지다.
생명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다. 그러나 매년 1만 명이 넘는 국민이 삶을 지속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위기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 이벤트성 대책이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 시스템으로의 전환이다. 이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정부의 대응도 멈춰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