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책 쏟아졌지만…고의적 사망 ↑
2020년부터 2025년 5월까지 국내 자살자 수는 정책 개입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정체 또는 반등 추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자살자 수는 연간 1만4439명(잠정치)으로, 인구 10만 명당 28.3명에 해당한다. 이는 정부가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을 통해 설정한 2027년 목표치(18.2명)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하반기에는 심리지원 핫라인 확대, 게이트키퍼 양성 등 정책이 연이어 시행됐으나, 사망자 수는 2021년까지 큰 폭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2023년 이후 오히려 상승세로 전환되며, 정책과 자살률 간 직접적인 인과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정책 시행 직후인 2021년 1월, 2023년 1월, 2024년 6월에는 각각 -3.8%, -2.1%, -1.9% 수준의 일시적 감소가 나타났으나 6개월 내 원래 수준으로 회귀했다.
연령별로는 청소년과 고령층, 중년층에서 각각 고유한 위험 요인이 관찰됐다. 10~19세는 코로나로 인한 고립과 입시 스트레스가, 20~39세는 청년실업과 연예인 자살 모방효과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50대는 팬데믹·IMF 이후 구조조정 및 가계부채 부담으로 2024년 전체 자살자의 21%를 차지했다. 80세 이상 고령층의 자살률은 2022년 기준 60.6명으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성별 격차는 전 기간 동안 뚜렷하게 유지됐다. 2020~2025년 월별 통계에서 남성 비중은 평균 70% 내외로, 여성보다 약 2.3배 많았다. 특히 군 복무, 장시간 노동, 음주, 정신건강 서비스 기피 등 남성 특유의 사회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자살은 경제 지표와도 유의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청년·중년 남성의 자살은 실업률 상승기와 동반되었으며, 가계부채 증가와 1인 가구 고령층 비율 상승도 고위험군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2023년 기준 국민 중 정신건강 상담을 받은 비율은 7.2%에 불과해, 치료 공백 또한 주요 위험 요소로 지적됐다.
사회적 사건과 계절성 요인도 자살률에 영향을 미쳤다. 전통적으로 봄철(3~5월)에 사망자가 집중됐고, 유명인 자살이 발생한 직후 여성 청년층 자살률이 급증하는 양상이 반복됐다. 예컨대 2022년 10월 배우 A씨 사망 후 20~39세 여성 자살은 한 달간 18% 증가했다.
정부는 2024년 6월 긴급대책을 통해 청년 시도자 치료비 전액 지원, 언론 가이드라인 보완 등을 발표했으나, 구조적 요인 해결을 위한 종합적 접근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중년 남성, 독거노인, 청소년 등 고위험군에 대한 직접적 복지 개입과 상담 접근성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정신건강 모바일 예약 시스템, 경찰 변사 기록과 SNS 키워드 분석을 결합한 조기경보 체계 구축, 언론 보도에 대한 AI 모니터링 강화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장기적으로는 연금, 노동, 교육 정책과 자살예방 정책이 연계된 범정부적 생명안전 프레임워크 마련이 요구된다. /이현정 기자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