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실습실 없는 학교도 있다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앞두고 학교 현장의 준비상황을 살펴본 결과, 예상보다 심각한 하드웨어 불평등이 확인됐다. 전국 초·중등학교에서 학생 1인당 디지털기기 보급률은 0.57대에 불과하고, 학교 보유 기기의 12.2%는 5년 이상 노후 기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강원·충남 등 일부 도 지역은 노후 기기 비율이 15%를 넘는다. 컴퓨터실·전산실 등 전담 실습실이 없는 학교도 적지 않으며, 교육정보부장 같은 디지털교육 전담 인력조차 임명되지 않은 학교가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AI 교과서를 도입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학교 현장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행정’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AI 디지털교과서는 단순히 교과서 형태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학습 데이터와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안정적 네트워크와 고성능 학습 단말기가 필수다. 그런데 실제 학교는 교육청 지원에 의존해 구형 노트북을 고쳐 쓰거나, 컴퓨터실이 없는 상태에서 수업을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용 기기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교사용 기기 위주로 보급된 곳도 많다. 하드웨어 격차가 콘텐츠 활용의 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정부가 AI 교과서라는 콘텐츠 혁신을 내세우며 교육격차 해소를 강조하지만, 하드웨어 격차를 방치한 채 교육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디지털교육 격차는 이제 단순한 인프라 문제가 아니다. 교육부는 AI 교과서 도입 계획을 밝히기에 앞서, 학교 현장의 물리적 조건부터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노후 기기 교체와 실습실 구축, 전담 인력 배치 등 하드웨어 기반을 우선 해결하는 것이 디지털교육의 시작이다. 일부 교육청의 예산 의존을 탓할 일이 아니다. 전국적 균형을 고려한 중앙정부의 종합 대책과 재정 지원이 절실하다.
AI 교과서 도입을 성급히 서두를 일이 아니다. 교육의 기초부터 갖추는 일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하드웨어 불평등 해소를 위한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실질적 지원에 나서야 할 것이다. AI 교과서가 또 다른 교육격차를 낳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