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민전 장애가 남긴 디지털 행정의 교훈
세종시 지역화폐 여민전이 지난 6월 발행 첫날부터 시스템 장애를 겪으며 시민들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시는 최근 서버 증설과 시스템 환경 개선, 비상대응 체계 강화를 완료하고 오는 7월 1일 180억 원 규모의 여민전 발행을 예고했다. 트래픽 예측 실패와 장비 과부하라는 원인을 조기에 파악하고, 단기간에 성능 보완을 마친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보여준 본질은 기술적 대응에 앞서 공공 디지털 정책 전반의 사전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점이다.
여민전은 단순한 소비 유도 수단을 넘어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 도구다. 그만큼 발행과 충전이 매끄럽게 작동하는 것은 시민 신뢰와 직결된다. 하지만 시스템은 접속 폭주 앞에 무력했다. 결제망 전환 시점에 대한 교통정리도 없었고, 캐시백 상향이 예고된 상황에서 트래픽 증가에 대한 예측도 부실했다. 공공 행정의 디지털 전환이 일상화되는 가운데, 이러한 허술한 대응은 정책 효과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문제는 여민전 사례가 결코 예외가 아니라는 데 있다. 긴급재난지원금, 각종 보조금 신청 시스템, 전자민원 서비스 등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병목 현상과 기술적 대응 실패는 구조적 대응 부재를 반증한다. 디지털 기술 도입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위기 대응을 전제로 한 사전 준비와 반복 훈련이다. 초당 처리 건수, 보안장비 설정, 부하 분산 구조는 단기간에 정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민간 수준 이상의 기술적 안정성과 즉각적인 복구 체계 마련은 공공서비스의 기본 조건이 돼야 한다.
세종시는 7월 발행을 앞두고 기술적 성능을 강화했다고 밝혔지만, 단발성 보완에 그쳐선 안 된다. 대규모 접속이 예상되는 정책의 경우, 기술 전문가가 참여하는 정기 사전 점검과 다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모의훈련을 제도화해야 한다. 또한 시민 불만이 집중되는 선착순 방식에 대해서도 기술적 한계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형평성과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유연한 조정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디지털 행정은 속도보다 신뢰가 먼저다. 반복되는 시스템 장애는 단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전 대응의식 결여라는 점에서 더 본질적인 위기다. 여민전의 개선 사례가 다른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디지털 정책에도 경고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