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실수요자만 남았다
상반기 충청권 분양시장에서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공급이 아닌 가격이었다. 대전과 세종은 올해 1~5월 신규 아파트 분양이 단 한 건도 없었지만 평균 분양가는 ㎡당 20% 가까이 올랐다. 충북도 24.5%의 상승률을 기록하며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공급은 멈췄고 가격은 뛰었고 그 사이에 실수요자만 남았다.
충청권의 수급 구조는 이제 시장 원리가 아니라 정책 공백과 구조적 왜곡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공급이 사라진 지역에서 가격이 상승하는 현상은 더 이상 수요가 가격을 결정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건설사들은 수익성 악화와 인허가 불확실성, 공공규제 부담 등을 이유로 분양을 미루거나 회피하고 있다. 공급 타이밍은 왜곡되고 분양가는 과거의 기준과 무관하게 오르고 있다.
문제는 그 부담이 고스란히 실수요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대전의 경우 지난해 1월 489만 원이던 평균 분양가는 올해 3월 631만 원까지 치솟았다. 세종은 분양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고 충북은 수도권보다 더 높은 분양가 상승률을 보였다. 공급이 제한된 시장에서는 선택지가 줄고 실수요자들은 비싼 분양가를 감수하거나 시장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
공급은 단지 물량의 문제가 아니라 주거 기회의 문제다. 공급이 끊긴 곳에서는 내 집 마련 시점이 뒤로 밀리고 선택의 폭이 좁아지며 금융 부담은 커진다. 실수요자들에게 이는 단순한 가격 상승이 아니라 거주 안정성의 붕괴로 이어진다. 특히 대전과 세종처럼 행정과 산업 중심지로 설계된 도시에 공급 공백이 발생한 것은 해당 지역의 주거 정책이 시장의 현실과 전혀 연결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상황에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은 실종돼 있다. 미분양 통계에 기반해 공급을 조절하던 과거 방식은 지금의 시장을 설명하지 못한다. 실수요자의 주거 접근성이 뚜렷하게 후퇴하는 지금 정책은 과잉 공급을 막는 일이 아니라 정상적인 공급을 다시 작동시키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실수요자는 시장의 가장 나중에 반응하고 가장 크게 타격을 받는다. 충청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급 정체와 분양가 상승의 괴리는 그 타격이 얼마나 심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계를 해석하는 일이 아니라 실수요자의 입장에서 다시 짜는 주거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