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낡은 이분법 넘어서자

2025-05-26     세종일보

제21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열린 네 차례의 후보자 토론회는 한국 정치의 오랜 이분법 구조를 다시금 드러냈다. 성장과 분배, 보수와 진보,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구도는 각 토론회에서 반복되었고, 후보자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해법을 제시했지만 본질적인 대립 구도는 바뀌지 않았다. 이재명 후보는 반도체·AI 등 첨단산업 투자 확대를 통한 성장 중심 전략을, 권영국 후보는 저소득층 권리 보장과 재분배 강화를 통한 구조적 불평등 해소를 주장했다. 김문수 후보는 규제 완화와 법인세 인하를 통한 기업 중심의 성장을 강조했고, 이준석 후보는 세대 교체와 창업 지원을 내세우며 정체된 경제에 청년의 숨을 불어넣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대립으로는 유효한 선택지를 꼽기가 어렵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성장이 멈춘 사회도, 분배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도 아니다. 성장은 노동 없는 기술 집약으로 이어지고, 분배는 미래세대의 재정 부담으로 전가되기 일쑤다. 기후위기, 인구 구조 변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구조적 전환의 시대에 단선적 해법은 실효성이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장과 분배 중 하나를 선택하는 정치가 아니라, 양자를 조화롭게 결합할 수 있는 정치 체제다.

정치는 상반된 가치를 조정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하지만 후보자 간 정쟁은 조정보다는 구도를 고착화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결국 이분법의 반복은 유권자의 피로만 가중시킬 뿐이다. 오는 5월 27일 열릴 마지막 TV토론회는 정치 체제 개편을 의제로 삼고 있다. 승자독식의 구조에서 벗어나 성장과 분배, 세대와 세대 간의 갈등을 실질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드는 논의가 되어야 한다. 후보들은 정책이 아닌 제도에 답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