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 위기 속의 한국 경제, 0.8% 성장의 민낯 -下.

고용 둔화와 불확실성 파고, 내수를 집어삼키다

2025-05-16     윤소리 기자

한국 경제의 저성장은 단지 생산 측면의 둔화에 그치지 않고 고용시장과 소비 전반으로 악순환을 확장시키고 있다. KDI는 이번 상반기 경제전망에서 제조업과 건설업을 중심으로 한 고용 위축이 현실화되고 있으며, 이는 서비스업의 신규 채용 축소로 연결돼 내수 전반의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성장률 0.8%라는 수치는 결국 고용 충격과 소비 위축이라는 이중 압력으로 재귀적으로 강화되는 구조를 내포하고 있다.

건설업 부진은 고용 감소로 직결되고 있다. 대규모 프로젝트 지연과 미분양 확대로 인해 건설 현장의 수요가 감소하고, 이는 하도급 및 지역 기반 인력 수요의 위축으로 나타난다. 제조업 역시 수출 감소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고용 안정성을 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의 수출은 GDP의 약 40%를 차지하며, 산업별 고용에서도 제조업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수출 위축은 직접적인 고용 타격으로 이어진다.

서비스업에서는 신규 채용 수요가 둔화되고 있다. 이는 경기 선행지표로서 의미를 가지며, 기업들이 미래 수요에 대한 기대가 낮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서비스업의 고용은 일반적으로 내수 경기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이 부문에서의 채용 위축은 향후 소비 심리의 추가 악화를 예고하는 요인이다. 가계 실질소득 감소와 고용 불안은 소비 여력 감소로 이어지며, 이는 다시 내수 침체를 심화시키는 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악순환은 불확실성 요인의 급증과 맞물리며 한국 경제 전반에 심리적 타격을 가중시키고 있다. KDI는 미국 관세 인상과 미중 무역 갈등의 재점화 가능성 등으로 인해 경제 정책 불확실성 지수가 7천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이는 과거 평균치인 200 대비 30배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나 팬데믹 시기를 능가하는 이례적인 수치다. 높은 불확실성은 기업의 설비투자와 가계의 소비 모두를 위축시키며, 총수요 감소를 통해 다시 성장률을 낮추는 구조로 작용한다.

지정학적 리스크도 경제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미국 대선과 통상정책 변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주요국의 기술 규제 등은 반도체·자동차·기계 등 한국의 주력 산업에 불확실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투자 계획의 지연과 수주 감소로 이어진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에 깊숙이 통합된 한국 제조업은 외부 충격에 대한 탄력성이 낮아, 중장기적으로 구조적 리스크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결국 현재의 저성장 국면은 고용 불안과 소비 위축, 글로벌 불확실성이라는 세 축이 맞물린 복합 위기 상황으로 분석된다. 이는 통상적인 경기순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구조적 요인이며, 단기 처방만으로 해결이 어려운 국면이다. KDI가 2026년 성장률을 잠재성장률 수준인 1.6%로 제시한 것도 낙관적 전망이 아니라 현 상태의 지속을 전제로 한 수치라는 점에서, 실질적인 회복이라기보다는 ‘저성장의 고착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경제의 구조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산업 재편, 혁신투자 확대, 인구구조 대응 정책이 동시에 추진되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는 2040년대 잠재성장률 0% 시대를 현실로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관세 인상이라는 외부 요인은 단지 촉발 요인에 불과하며, 지금 필요한 것은 수치 너머의 구조를 꿰뚫는 정책적 통찰과 근본적 대응이다. /윤소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