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의 책임자'임을 증명할 때
제21대 대통령 선거의 윤곽이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3인의 후보가 확정되면서 정치권은 다시 구도의 셈법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어떤 진영이 이기느냐가 아니라, 어떤 정책이 살아남느냐를 물어야 할 시점이다.
김문수 후보는 ‘중산층 강화’와 ‘경제 회복’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그 방식은 여전히 모호하다. 감세와 규제완화를 통한 민간 주도 성장 전략은 반복되어온 처방이다. 소득 분포가 양극화된 현재 구조에서 중산층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회복될 것인가에 대한 분석은 부재하다.
이재명 후보는 강력한 추진력을 강조하지만, 대표 시절 내세웠던 기본소득 공약은 사실상 후퇴했다. 대신 ‘복지국가’를 지향한다고 하나, 재정의 뒷받침 없이 제시되는 복지 확대는 구체성보다 수사에 가깝다. 팬데믹 이후 악화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이준석 후보는 2030세대를 전면에 내세우며 ‘정당 민주화’와 ‘디지털 정치개혁’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독자 출마를 선언한 신생 정당의 현실에서 입법 기반이나 제도화를 설득력 있게 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치 문법의 전환을 말하면서도 제도적 실현 가능성에 대한 설계는 뚜렷하지 않다.
문제는 유권자가 이러한 현실을 감지하고도 여전히 진영 중심의 선택을 반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구조는 낡았다. 각 정당은 정책보다는 이미지 중심의 메시지를 반복하고, 방송 토론은 총량제 시간을 배분하는 수준에서 정책의 충돌과 검증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공천 구조는 여전히 중앙 집중적이고, 여론조사는 후보 검증이 아닌 판세 경쟁의 도구로 전락했다. 유권자가 정책을 기준 삼기 어려운 정치 생태계가 고착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다르기를 요구받는다. 한 표가 거대 담론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일자리와 주거, 재정과 안보, 디지털 전환과 기후위기 등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쓰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지를 유권자가 직접 판단해야 한다.
누구의 말이 더 크고 날카로운가가 아니라, 누구의 정책이 더 구체적이고 지속 가능한가를 봐야 한다. 유권자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감세 없이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말이 현실적인가? 행정 경험 없는 개혁 공약이 과연 실현 가능한가?
2025년의 대선은 단순한 권력 교체의 장이 아니다. 이 선거는 한국 민주주의가 정당 정치의 틀 안에서 정책 경쟁을 회복할 수 있는가, 그리고 유권자가 진영의 구도를 넘어서 책임 있는 주권 행사를 할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투표함이 열릴 그날, 선택은 각자의 것이지만, 그 결과는 모두의 몫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