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낮은 걸음, 깊은 변화

2025-04-22     세종일보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 당진시 솔뫼성지를 방문한 모습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다. 생전 그는 "장식 없이 간소한 무덤"을 남기겠다는 유언을 남겼고, 바티칸이 아닌 로마의 성당 지하에 안장되었다. 그의 삶은 끝까지 검소했고, 그의 죽음은 다시 한 번 그 삶을 증명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 번, 그가 생전에 남긴 발자취를 되짚는다. 그 여정 한가운데 '충청'이 있다.

2014년 여름,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전, 세종, 당진, 서산, 음성의 땅을 밟았다. 청년과 약자를 만나고, 순교자의 자취를 되새겼다. 형식보다 마음을, 기념보다 실천을 중시했던 교황은 헬기가 아닌 열차를 탔고, 연설보다 손잡음을 남겼다. 그의 방문은 종교적 행사를 넘어 사회적 연대를 상징하는 계기가 되었고, 충청권은 그 이후 변화를 경험했다.

대전 월드컵경기장은 5만 명이 모인 미사의 장소에서 평화와 기억의 공간으로 거듭났고, 세종시의 가톨릭대학교는 청년 간 소통과 국제 교류의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솔뫼성지와 해미읍성은 각각 국제 순례지와 문화관광지로 부상했고, 꽃동네는 나눔과 복지의 국제 모델이 되었다.

특히 해미읍성은 2020년 교황청으로부터 한국 최초의 국제순례지로 지정되었고, 2023년 기준 연간 방문객이 87만 명을 넘어섰다. 유네스코 등재 추진, 문화행사 확대, 인프라 정비가 함께 이뤄졌고, 해미는 이제 가족과 청년이 찾는 문화의 장으로 자리잡았다. 꽃동네는 세계 각국의 복지기관이 벤치마킹하는 공동체가 되었고, 음성군은 이를 기반으로 장애인 친화도시 조성에 나서고 있다.

그의 발걸음이 닿았던 장소들은 이제 단지 성지에 머물지 않는다. 치유와 포용, 연대의 가치를 품은 공동체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앞두고, 충청권의 순례지들이 다시 세계 청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에 남긴 정신은 더 이상 과거의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땅의 청년과 약자, 지역과 세계를 잇는 실천적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