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서 쓴다'는 편견…진짜 문제는 말기 진료·단가 체계

2025-04-22     윤소리 기자

건강보험 지출 확대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의료비 증가의 핵심 원인이 단순한 고령화가 아니라 가격 구조와 생애 말기 의료 이용 집중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특히 85세 이상 초고령층의 의료 이용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65~74세 전기 고령층은 오히려 의료 이용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세대별 맞춤형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

의료비 지출 증가에 영향을 주는 요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단가 상승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전체 진료비 증가의 절반 가까이는 의료 서비스의 가격 상승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고령 인구의 증가가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비중은 그보다 낮은 수준에 그쳤다. 특히 의원급 외래 진료의 수가 인상은 병원급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됐고, 진료량 확대와 단가 상승이 맞물리면서 지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85세 이상 고령자의 진료비는 점점 더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사망 전 1년간의 의료비 지출은 10년 사이 약 3.4배 증가했으며, 사망 직전 1개월간 의료비도 같은 기간 동안 두 배 이상 늘었다. 말기 환자의 병원 이용이 지속되고 있는 데에는 치료 기술의 확대뿐 아니라, 지역사회 기반 말기 치료 인프라의 부족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65세 이상 인구 중에서도 65~74세에 해당하는 전기 고령층에서는 의료 서비스 이용이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건강검진 수검 증가, 만성질환 조기 관리, 생활습관 개선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되며, 이는 전 세대보다 건강한 상태로 고령기에 진입한 베이비붐 세대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의료비 증가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이들이 향후 초고령층이 되면 다시 의료 수요가 급증할 가능성이 있어 중장기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에 비해 현재의 건강보험 보상체계는 의료 이용 패턴의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행위별 수가제는 진료 건수에 따라 비용이 지급되는 방식으로, 진료량을 늘릴수록 수익이 증가하는 구조다. 이로 인해 고령층 진료가 집중되는 의료기관에서는 과잉 진료가 발생할 수 있으며, 불필요한 고비용 의료가 의료비 증가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안으로는 주치의제 도입과 예방 중심의 보상 체계 구축이 제시되고 있다. 만성질환 관리나 생활습관 개선 등 장기적 관점의 의료 서비스에 보상을 제공하고, 일정 성과를 달성할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의료비 지출을 구조적으로 줄이고, 1차 진료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다.

또한 생애 말기 의료비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시설을 확대하고, 재택 기반의 ‘재가의료’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 병동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높은 호스피스 치료는 환자의 삶의 질도 높이면서 건강보험 지출을 줄이는 방안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말기 환자의 병원 중심 치료 의존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 대책이 요구된다.

장기적으로는 ‘건강화 고령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전기 고령층이 85세 이상 초고령층으로 진입할 경우, 현재 억제되고 있는 의료비가 다시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단기 수치를 넘어선 생애주기별 의료 소비 패턴에 기반한 정책 설계가 요구되며, 고비용 시점을 늦추는 데서 나아가 집중도를 낮추는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구조를 유지한 채 고령화와 가격 상승이 동시에 진행될 경우, 건강보험 재정은 향후 수년 내에 누적 준비금 소진과 같은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제도 개편 없이 보험료만 인상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수가 체계 개편, 의료이용 구조 재설계, 생애 말기 서비스 분산 등 다각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소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