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너진 재난 대응의 현실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국가 재난 대응 시스템의 근본적 취약성을 드러냈다. 26일 현재 의성, 안동, 영양, 청송, 영덕 등 5개 시·군에서 18명이 사망하고, 1만5천185ha의 면적이 불에 타는 등 피해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진화율은 68%에 머물러 있으며, 강풍과 건조한 날씨는 진화 작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순간 최대 초속 11m 이상의 강풍 속에서 진화 헬기 추락 사고까지 발생해 대응 능력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고령 인구가 밀집한 지역의 대피 과정은 재난 대응의 치명적 공백을 확인시켰다. 체계 없는 대피 문자와 불분명한 대피 경로로 인해 주민들은 오히려 더 큰 위험에 노출되었다. 영덕군 7번 국도의 피난 행렬은 불길에 막혀 아비규환으로 변했고, 104명의 주민은 해경에 의해 방파제에서 겨우 구조되었다.
기상청의 4월 강수량 전망은 더욱 우려스럽다. 평년보다 적을 확률이 40%에 달하며, 올해 3월 24일까지 전국 강수량은 평년의 73.6%에 불과하다. 특히 영남 지역의 경우 대구·경북은 평년의 65.0%, 부산·울산·경남은 52.5% 수준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재난 대응의 근본적 문제는 명확하다. 고령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대응, 노후화된 소방 장비, 비체계적인 정보 전달 시스템은 인명 피해를 가중시켰다. 2만3천491명의 주민이 대피한 상황에서 단순한 대피 독려를 넘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
국가 재난 대응 시스템은 근본적인 재설계가 불가피하다. 고령 지역 맞춤형 대피 계획, 실시간 정보 전달 체계, 신속하고 정확한 구조 시스템 구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반복되는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기존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이고 철저한 점검이 선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