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본의 침묵이 남긴 법적 공백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이 13년째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일본 극우 정치인 스즈키 노부유키는 2012년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는 문구가 적힌 말뚝을 묶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첫 재판부터 한 차례도 출석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대한민국 법무부의 범죄인 인도 요청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가 간 사법 공조는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법적 원칙이다. 범죄가 특정 국가에서 발생했을 경우, 그 국가의 법적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며, 이에 대한 국제적 협력은 각국의 사법 체계를 존중하는 기본적인 의무다. 그러나 본 사건처럼 가해 당사국의 비협조로 인해 사법적 절차가 13년째 멈춰 있는 것은 법과 원칙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일본 정부의 태도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저해하는 행위이다. 범죄인 인도는 양국 간의 정치적 갈등과 무관하게 법리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그럼에도 일본은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며 실질적인 협조를 거부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양국 간 외교적 마찰을 넘어 국제법 체계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국제사회의 사법 공조 원칙을 무시하는 태도가 용인된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일본에도 부정적인 선례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 사안을 단순한 개별 사건이 아닌 국제법과 사법 주권의 문제로 확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 국제 사법기구를 활용한 외교적 압박을 병행하며, 국제사회와 공조하여 일본의 비협조적 태도를 문제 삼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사법적 공백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책 마련도 고려해야 한다.
법치주의는 한 국가의 사법적 판단이 타국의 협조 여부에 따라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대한민국의 사법 주권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와 연대해 법적,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야 하며, 일본 정부 역시 국제적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재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