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도 코인 거래한다...3500개 기업 실명계좌 발급
7년간 굳게 닫혀있던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진입이 마침내 허용된다. 금융위원회 가상자산위원회는 지난 13일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를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2017년 '투기 과열' 우려로 전면 차단된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국내 법인들은 가상자산 시장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왔으나, 글로벌 블록체인 산업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해 정책 변화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부터 기존 가상자산 보유 법인의 매도를 위한 실명계좌 발급을 허용한다. 검찰, 국세청 등 법집행기관을 시작으로 비영리법인과 대학교까지 그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가상자산 거래소들도 수수료로 받은 가상자산을 운영비용과 세금 납부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그동안 보유만 가능하고 현금화가 불가능했던 기업들에게 실질적인 운영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조치다.
하반기에는 더욱 본격적인 시장 개방이 이뤄진다. 금융회사를 제외한 상장기업과 전문투자자 등록 법인 등 약 3,500개사가 가상자산 매매 실명계좌를 발급받을 수 있다. 이들은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 경험이 있는 전문 투자자로 분류되며, 블록체인 관련 투자 수요가 높은 점이 고려됐다. 다만 금융회사의 직접적인 가상자산 매매 및 보유는 금융 시스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당분간 허용되지 않는다.
이에 발맞춰 거래소들도 보안 강화에 나섰다. 한국거래소는 차세대 시스템을 도입해 매매 체결, 청산결제, 정보 분배 등 IT 시스템을 통합했다. 이를 통해 거래 효율성과 처리 용량이 대폭 향상됐으며, 시스템 안정성도 강화됐다. 특히 이상거래탐지시스템을 활용한 해킹 방지와 자금세탁 방지 시스템이 대폭 강화된다. 개발 단계부터 보안 위협을 제거할 수 있도록 보안 감사 솔루션도 새롭게 구축됐다.
정부는 거래 목적과 자금 출처 확인을 의무화하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하반기에 도입할 예정이다. 금융사 내부망 보안도 강화되어 고객정보 보호 체계가 한층 견고해진다. 인터넷망과 업무망을 철저히 분리하고, 금융사의 IT 인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사이버 보안 역량을 강화하는 작업도 병행된다. 이를 위해 민관 협력 TF를 구성하고,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2단계 입법도 추진한다.
이번 정책 변화는 글로벌 트렌드와도 맥을 같이한다. 미국의 비트코인 ETF 승인, EU의 MiCA 규정 도입, 싱가포르의 라이선스 제도 등 주요국들은 이미 제도권 내에서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를 허용하고 있다. 일본 역시 2017년부터 가상자산 거래소 등록제를 시행하며 법인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성숙도를 높이고 기업들의 블록체인 기술 투자를 촉진한다는 방침이다. 동시에 시장 조작과 자금세탁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한 관리·감독을 유지할 계획이다. 특히 거래소들의 전산 시스템을 철저히 정비하고 자금세탁 방지 조치를 한층 강화하는 등 시장의 안정성 확보에 주력할 예정이다. /윤소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