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젊은 층까지 번진 전세 사기, 근본적 제도 개선이 답

2025-01-02     세종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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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악성 임대인'의 명단이 1천명을 넘어섰다는 소식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들 중 20~30대가 32%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불과 19세의 임대인이 5억 7천만원의 보증금을 미반환한 사례도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부동산 거래 질서가 심각하게 훼손되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젊은 층이 전세사기의 가해자로 등장하는 현상은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우선 이들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부동산 투기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왜곡된 인식이 젊은 층까지 파고든 것은 아닌지, 전세금을 단순히 쉽게 구할 수 있는 '자금'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현행 전세 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도 필요하다. 한국의 전세 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임대차 방식이다. 임차인의 거액 보증금이 사실상 임대인의 영업 자금이나 투자 자금으로 활용되는 구조는 필연적으로 위험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 가입 의무화와 같은 단기 대책과 함께, 월세 중심의 임대차 시장 전환과 같은 장기적인 제도 개선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사태가 우리 사회의 신뢰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1조 9천억원에 달하는 미반환 전세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이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위해 평생 모은 서민들의 자금이며, 한 가정의 미래가 걸린 소중한 돈이다. 이러한 신뢰 붕괴는 결국 임대차 시장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금까지의 대응이 미흡했음을 인정하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임대인 자격 심사 강화, 전세금 에스크로 계좌 의무화 등 실효성 있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동시에 부동산을 통한 약탈적 거래 행위에 대한 처벌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동산이 투기의 대상이 아닌 주거의 수단이라는 인식을 사회 전반에 확립하는 일이다. 젊은 층마저 전세사기의 유혹에 빠지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왜곡된 부동산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제는 건전한 부동산 거래 질서 확립을 위한 범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