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제도 확대 속 양극화 심화 조짐
2023년 퇴직연금 적립금은 381조 원에 달하며 전년 대비 13.9% 증가했다. 그러나 제도의 확산과 가입률 증가에도 불구하고, 적립금 운용 방식과 사업장별 도입 현황에서 양극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전체 적립금 중 80.4%는 원리금보장형으로 운용되며, 안정성을 중시한 투자 방식이 여전히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실적배당형의 비중은 12.8%로 전년보다 1.6%p 상승하며 고위험·고수익을 선호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제도 유형별로는 확정급여형(DB)이 전체 적립금의 53.7%를 차지하며 여전히 주요 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IRP)의 성장세는 가속화되고 있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퇴직연금 도입률의 격차는 뚜렷했다.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의 도입률은 91.7%로 거의 모든 근로자가 혜택을 받는 반면,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은 10.4%에 불과했다. 도입 대상 사업장 162만 5천 개소 중 실제 도입 사업장은 26.4%에 머물며,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퇴직연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가입 근로자 역시 특정 연령대와 직종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가입률은 30대와 40대에서 각각 60.5%, 58.3%로 가장 높았으나, 20대는 50.2%, 60대 이상은 37.4%에 그쳤다. 산업별로는 금융보험업과 제조업의 가입률이 각각 75.5%, 63.3%로 높은 반면, 숙박·음식업은 23.7%로 낮아 업종 간 불균형이 두드러졌다.
한편 중도인출과 해지 비중도 증가세를 보였다. 2023년 중도인출 금액은 2조 4천억 원으로 전년 대비 40.0% 증가했으며, 주택 구입(52.7%)과 주거 임차(27.5%)가 주요 사유로 나타났다. 가입자의 경제적 부담이 제도 활용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퇴직연금을 해지했다는 근로자 A(38)씨는 "높아지는 금리와 불안정한 시국에 가계대출금을 갚아나가기 어려워 해지 신청을 했다"며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전했다. /윤소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