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액 체납자들의 도덕적 해이, 더 이상 묵과하면 안돼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고액·상습 체납자' 명단이 또다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1만 274명의 체납자들이 미납한 세금이 무려 5천173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들 중 상당수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 아닌, 의도적으로 납세를 회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급 차량을 빌려 타고 다니거나 불법 영업을 하면서도 세금 납부는 외면하는 이들의 뻔뻔한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주목할 점은 체납자 중 10억원을 초과한 경우가 22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체납액만 해도 568억 4천만원에 이른다. 한 개인이 수십억 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것은, 이미 개인의 경제적 문제를 넘어 사회 정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대다수 시민들의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체납자들의 연령대를 보면 더욱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난다. 50~60대가 절반을 넘는다는 것은 이들이 우리 사회의 중추적 위치에서 경제적 능력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곧 이들의 체납이 지불 능력의 부재가 아닌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현행 제도상 고액 체납자 명단 공개는 이들에 대한 유일한 제재 수단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마저도 체납액의 50% 이상을 납부하거나 체납액이 1천만 원 미만이 되면 공개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납세는 시민의 기본적 의무이자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더욱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
정부는 단순한 명단 공개를 넘어, 고액 체납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징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재산 은닉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고, 필요하다면 형사처벌까지 고려하는 등 강력한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조세정의 실현이 사회 통합의 핵심 가치임을 재인식시키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납세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져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이를 회피하는 것은 곧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고액 체납자들은 이제라도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고 성실한 납세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정부 역시 더 이상 이들을 관용의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조세정의 실현을 위한 보다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