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시간30분 헤맨 고위험 산모, 의료 선진국의 민낯

2024-11-04     세종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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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한 임신부가 응급 분만을 위해 200km나 떨어진 순천까지 가야 했다는 소식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28주 차 조산위험이 있는 산모가 4시간 30분 동안이나 병원을 찾아 헤매야 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만든다.

특히 충청권의 대학병원을 포함해 수도권의 20여 개 병원들이 모두 수용을 거부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인큐베이터 시설 부족'이라는 이유로 거부된 이번 사례는, 의료 인프라의 양적 확충만이 아닌 질적 개선이 시급함을 보여준다. 응급 의료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는 곧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가 된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의료 체계가 안고 있는 여러 구조적 문제들을 동시에 보여준다. 첫째, 응급 의료 시설의 지역 간 불균형이다. 대전이라는 대도시에서조차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지방 중소도시의 의료 환경이 얼마나 열악할지 짐작케 한다. 둘째, 고위험 산모를 위한 특수 의료 시설의 절대적 부족이다. 셋째, 응급 상황에서의 병원 간 협력 체계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심각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당장 필요한 것은 권역별로 충분한 고위험 산모 치료 시설을 확보하는 것이다. 더불어 응급 의료 네트워크를 강화하여, 유사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의료진의 처우 개선과 함께 응급 의료 시설 운영에 대한 정부 지원도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저출산이라는 국가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신부가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더욱 큰 사회적 문제다. 의료는 국민의 기본권이자 국가의 기본 책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모든 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체계를 시급히 구축해야 할 것이다.